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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砥柱中流5] 동굴의 우상

지비저널 기자 입력 2020.11.15 21:57 수정 2021.04.04 13:35

동굴의 우상

          -소설가 정완식

 

↑↑ 금오산의 돌탑 부분

이십 년 전쯤 조선족 청년과의 이야기 중에 모택동이 화제에 올랐다. 그는 모택동을 존경하는 사람이었다. 최고 권력자의 아들이 전쟁터에서 전사했다는 이유였다. 모택동의 아들(마오안잉)이 중공군으로 참전해 평안도에서 폭사하지만, 그것이 존경할만한 이유가 되는가?

 

모택동이 추진한 대약진운동은 무리한 경제성장과 토지 집단화 정책을 위해 합당하지 않는 목표량을 세우자 관료들의 허위보고가 일상이 되었다. 불리한 통계를 없애는 것은 다반사였다. 통상 사망자는 2천만 명으로 추정하지만 홍콩대 프랑크 디쾨터 교수는 『마오의 대기근(Mao's Great Famine)』을 통해 4천5백만 명이라고 진단한다. 세계대전에 버금가는 수치이다. 그래도 모택동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고 한다.

 

중국은 천하를 통일하고 나면 가장 큰 골칫거리가 개국공신들이 병권해제와 잉여병력이다. 우선 6·25를 통해 조선족 부대를 인민군 4, 5사단으로 편성해 동족과의 전쟁에 참전시키고 남아도는 병력을 전쟁 포화 속에 인해전술로 밀어 넣었다.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위기에 몰린 모택동은 문화혁명으로 반전을 노리고 홍위병들을 이용해 개국공신들을 숙청했다. 펑더화이(彭德懷), 허룽(賀龍), 류샤오치(劉少奇)는 죽고 덩샤오핑(鄧小平), 리리싼(李立三)을 필두로 쉬샹첸(徐向前), 천이(陳毅), 쉬스유(許世友), 샤오징광(蕭勁光) 등 많은 군계 정계 인사들이 고초를 겪었다.

 

모택동의 개 노릇을 하던 린뱌오(林彪) 역시 도망치다 비행기 사고로 죽게 된다. 『낙타상자(駱駝祥子)』의 세계적인 소설가 랴오서(老舍)는 굴욕을 당하고 자살했다. 문화재 파괴는 수를 헤아릴 수 없었으니 자신들의 문화를 스스로 파괴한, 흔치 않은 경우이다. 『모주석 어록』 을 쥐고 중국 전체를 때려 부수던 1천만 명이 넘는 홍위병은 국가재정으로 숙식을 제공했다. 이들은 후일 농촌으로 쫓겨나 비로소 속았음을 느꼈다.

 

모택동은 중국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정치인이지만 자금성 광장 인민의 붉은 피처럼 칠해진 벽 위에 우상이 되어 걸려 있다. 우상 만들기는 그들의 특징이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올바른 인식을 가로막는 것으로 네 가지 우상을 말했다. 그것은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극장의 우상이 그것이다. 모택동의 우상화를 통해 범한 오류 중 동굴의 우상을 보자. ‘동굴의 우상’은 개인적인 특성이나 환경, 교양 등이 사물에 대한 바른 견해와 판단을 그르치게 하는 편견을 말한다.

 

공산당식 선전방식의 가장 큰 특징은 날조와 과장이다. 문화혁명을 통해 끊임없는 방송과 선전매체를 통한 주입식 오류로 무지와 혼돈에 빠진 수많은 사람이 우상의 손가락질에 따라 서로 죽이며 전통을 폐허로 만든 것이다. 권력자의 곁에는 요망한 환관과 문인들이 넘쳐나는 법이다. 히틀러의 요제프 괴벨스처럼 모택동의 그 4인방 중에서는 언론과 평론을 공부한 장춘차오(張春橋), 야오원위안(姚文元)이 대표적이다. 갖은 요설로 ‘사슴을 말’이라고 현혹하여 대중을 동굴로 밀어 넣어 한쪽 눈으로 우상만 보는 개구리로 만든 자들이다. 젊은 홍위병들은 국가의 돈으로 먹고 자면서 요설에 귀먹은 채 동굴의 오류로 중국을 광기의 세상으로 만들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다양한 대중매체는 오른쪽 눈이나 왼쪽 눈만으로 세상을 보라고 강요하고 있다. 동굴에서 요망한 환관과 문인의 요설에 취해 있지는 않은가 되돌아보자. 오점을 남기고 자살한 정치인, 살아 있는 권력자를 우상화하는 외눈박이 개구리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야기를 나눈 조선족 청년에게서 홍위병의 잔영을 보았음을 그 당시에 느꼈다면 스스로도 ‘동굴의 오류’를 범하지나 않았을까 자문해 본다.

 

 

 

*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견해이며, 지비저널의 편집 방향과는 관계 없음을 알려드립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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