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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다시 한 번 일어나라 구성면이여,,, 화합과 변화를 통한 새로운 길

대경저널 기자 입력 2023.06.13 06:42 수정 2023.06.13 07:26

-2023년 4월 구성면민의 날 제정
-우리고장 바로알기 사업 추진
-구성면의 발전은 면민의 몫

기획특집 <우리 고장을 찾아서1. 김천시 구성면 편>

 

성인을 사모하고,
학동들과 유생들의 힘찬 글 읽는 도동서원 예 있나니,
국란을 당함에 분연히 떨쳐 일어난 구성의 매운 얼이여!
도시화, 수도권 집중으로 한 갓 일장춘몽이던가?
구성면민 화합하면 구성 중흥 못 이룰 소냐!

↑↑ 지난 4월 1일 제1회 구성면민의날(구성면 제공)

신석기시대와 청동기 시대의 유적까지 보유하고 있는 김천의 뿌리 깊은 고장 김천시 구성면(龜城面).

구성면의 어원은 다음과 같이 전해온다. 예전 지례면 상부리에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그 못에서 거북(龜) 형상을 한 돌이 나와 그 연못을 구연이라 했다. 구연이라는 이름을 통해 마을 뒷산을 구산이라 불렀고, 그 구산에 신라시대에 산성을 쌓았는데 그 산성 이름이 구산성 혹은 구성이라 부르게 된것에서부터 구성의 어원이 나왔다고 한다. 이 구성(龜城)이 지역명이 된 것은 1934년 석현면과 과곡면을 합쳐 새로운 면이 탄생했는데, 그 이름을 구성면이라 이름 짓게 됐다고 한다. 또한 과거 지례현의 현청도 현재의 구성면 안에 있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구성은 보통명사로서 지례와 구성 지역 전체를 일컫는 지명의 하나로 사용되었으리라고 짐작해본다.
↑↑ 현재 신축중인 구성면 행정복지 센터가 뒤로 보인다.

구성면의 위치를 살펴보면 북으로는 시내 양금동 등과 대항면, 동으로는 조마면과 맞닿아 있으며, 남으로는 지례면 서로는 부항면과 우두령 넘어 충북 영동과 접경을 이루고 있다. 구성면은 김천 전도를 펼쳐놓고 살펴봤을 때, 시군통합 이전의 김천시를 구성했던 동지역과 함께 김천시의 중심부에 해당함을 알수 있다. 2022년 12월 말 현재 인구는 2,712명이며, 면적은 대덕면(98.39㎢)에 이어 김천지역에서 두 번째(구성면 95.44㎢)로 넓은 지역이다.
↑↑ 감천이 흐로고 있다. (지품교에서 본 감천)

구성면의 약80%는 산지이며 남에서 북으로 그리고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한반도에서는 보기 드문 특이한 하천인 감천변과 산골골마다 존재하는 그 지류에 기반을 둔 곳에 농토가 위치한다. 재배 작물은 벼를 비롯한 양파, 그리고 과수작물인 자두 및 복숭아가 주를 이루고 있다. 최근 들어 샤인머스캣 등을 재배하려는 농가도 있지만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다.
↑↑ 청동기 시절 유물인 고인돌이 양파밭 한가운데 놓여 있다.

신석기 시대의 유물인 고인돌은 물론 신석기 유물까지 나온 구성면, 철도도 고속도로도 없던 시절 구성면의 일부는 김산현 소속으로 또 일부지역은 지례현 소속으로 인근에 위치한 개령현과 함께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연안이씨, 성산여씨, 은진송씨. 남평문씨, 김녕김씨 등 양반의 일가를 이루었던 씨족들의 집성촌의 존재로 인해 김천의 5대 반가에 들었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필봉 아랫마을인 현재의 미평2리에서 장(곤장 등)을 맞고 감천을 건너던 죄인들이 많이 상했기 때문에 지례현으로 현청 소재지가 옮겨 갔다’는 얘기가 전한다. 이 지역에서는 현재도 관청을 이루었던 기와 파편 등의 유물이 나오고 있다고도 했다.
↑↑ 감천으로 흐르는 구곡단가의 중심 하원천

↑↑ 이민관 선생의 모성정(건립당시 우모정)

구성면 상좌원의 선비 이민관 선생은 공자를 사모하여 구곡단가라는 시가를 지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의 호는 모성인데, 구곡 중 제1곡이 바로 모성암이며, 현재 모성정(건립당시에는 우모정)이 위치해 있다. 모성이라는 뜻은 공자를 숭모하고 사모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 김녕김씨 집성촌이던 저익마을

이곳에는 공자 생전에 은둔했던 장저(張沮)와 걸익(桀溺)을 의미하는 저평(沮坪)이라는 의미의 저익마을도 있다. 단종 복위 사건의 주역인 김녕김씨 김문기 선생의 후손이 그 마을의 주인이라 했다. 또한 ‘아침에 도를 깨치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란 뜻을 지칭하는 문도동(聞道洞)의 뜻인 도동서원도 위치한다.

↑↑ 감호 여대로 선생의 의병창의비. 지난 6월 12일 창의 431주년 기념행사가 개최됐다.

구성면에는 유학의 글 읽은 선비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키신 분이 계신다. 바로 감호 여대로 선생이 그분이다. 향토 사학자의 한 분은 “경상도에는 두 분의 위대한 유학자가 계시는데, 그 중 한 분은 경(敬)을 중시 하던 퇴계 이황 선생이요, 또 다른 한분은 의(義)를 중시하던 남명 조식 선생이시다”고 밝힌 적이 있다. 여대로 선생은 바로 의를 숭상하는 남명 조식 선생의 문인으로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인근인 개령현에 왜군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접하자 바로 의병을 일으킨다. 그는 김면(고령지역 의병장)과 권응성(조마면 지역 의병장, 여대로 선생과 사돈지간) 선생 등과 우두령에서 왜군을 격퇴했으며, 또한 지례 전투에서에서도 화공을 펼쳐 승리를 이끈다. 이어 명군이 개입하게 되고, 여 선생 등의 의병이 거듭된 전투에서 승리하자 개령과 김산에 위치한 왜군들은 퇴각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나 안타까이 석현전투에서 권응성 의병장이 목숨을 잃었으며, 여대로 선생의 둘째 아들도 전사한다. 여대로 선생의 의병창의비가 포도CC 인근에 위치한다. 선생은 합천군수를 지냈으며 경양서원에 향사됐다.
↑↑ 방초 이정복 선생의 방초정과 최씨담

상원리에는 방초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2019년 보물 2047호로 지정된 이 정자는 방초 이정복 선생이 선조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루정(樓亭)이라고 한다. 이 정자 옆에는 이정복 선생의 처인 화순최씨의 정려각이 있으며, 그 곁에는 그녀의 종노였던 석이의 비문이 있다. 방초정 앞에는 최씨담(崔氏潭)이라는 연못이 있는데, 최씨담은 이정복 선생과 혼인한 화순 최씨가 친정에서 시집으로 오다 왜병에 쫓겨 이 못에 투신을 했다고 한다. 그때 그녀의 여종이던 석이도 뒤를 따라 투신을 했다. 이곳 방초정과 최씨담은 임진왜란이라는 큰 국난과 부인을 잃은 가슴 아픈 방초 이정복 선생의 가족사와 선조를 추모하는 우리 민족의 모습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방초정을 찾은 이들의 가슴에 애틋함을 전해주고 있다고 한다.
↑↑ 조선 명종때 부터 내려온 사성족계기실비

금광교 옆에는 네 성씨의 씨족간 혼인을 통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계를 기념하는 사성족계기실비(四姓族契紀實碑)가 위치하고 있다. 이 비석은 조선 명종 때부터 시작된(명종 11년, 1556년) 성산 여씨, 인천 이씨, 하빈 이씨, 진주 강씨 등 네 성씨가 계를 모아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을 기념하고 있는 비석이다. 강산이 수십 번 변함에도 변함없는 그들의 정성과 마음에 옷자락을 가다듬을 만한 비석이다.
↑↑ 미평마을의 430년된 보호수

↑↑ 양각2레에서 동제를 지내던 동제나무

↑↑ 구성면 행정복지센터 뒤편에 잘라진 동제나무

예로부터 오래된 나무는 동리 사람들에게 정자나무 혹은 서낭나무가 되어 마을을 보호하고 제를 지내 평안을 빌었다고 한다. 미평리 느티나무는 수령이 430년, 상좌원리의 느티나무는 수령이 약 330년 정도 되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월계에는 500년 이상 된 느티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받았다고 한다. 구미리에는 200년 이상의 수령을 자랑하는 왕버들 나무도 보호수로 지정 되어 있으며, 기사를 쓰던 중 양각1리에 1천여 년이 된 나무가 있다는 기록이 있어 찾아가봤지만, 아직 검증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덕분에 양각2리에서 동제를 지내면서 나무에 불을 지른 흔적이 남아있는 나무를 찾아낸 보람도 있었다.
↑↑ 동제를 지내던 자리를 설명하고 있는 심재혁 이장

상좌원리 심재혁(68세) 이장에 의하면 “우리 마을에도 예전 동제를 지냈는데 지금은 지내지 않고 있다”며, 심 이장이 기억하는 마을 동제를 지내던 현장을 찾았다, 마을 뒷산 중턱에 위치한 동제의 현장은 동제를 지냈다는 심재혁 이장 같은 분이 찾아 나서지 않았다면, 그저 무심히 스칠 산지로 바뀌어 있었다. 그는 “여기쯤에다 제물을 올리고 제사를 지낸 것 같다. 밤에 지낸 것으로 기억되는데, 온 산이 횃불로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다. 동제의 목적은 마을과 나라의 안녕이었다. 제를 지낸 다음날이면 소분을 나눠주곤 했다”고 어린 시절의 추억을 기억해냈다. 현재 면사무소 뒤편에도 동제를 지내던 나무가 있었는데 지금은 밑둥만 남아 있다. 60여년이라는 세월의 무상함을 느낄 수 있었다. 심 이장은 “예전에 이쪽 산위로 작은 길이 나있었는데 여기서 구성중학교(임진왜란 당시 석현전투가 벌어진 곳)까지 바로 연결되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감천은 구성중학교 근처에서 인위적으로 직천을 이루기도 했다.
↑↑ 감천이 직천을 이루기 전의 사진(심재혁 이장 제공)

그의 이야기 속에서 1960년대 가난했지만, 사람이 살고 있는 구성면이 등장한다. 그는 “당시 초등학교가 구성면에만 7개가 있었는데 우리 학교가 가장 큰 학교로 한 학년에 세 개 반이 있었다. 당시 교장 선생님께서 훈화 말씀을 하실 때 ‘1천여 학생 여러분’이라는 말을 또렷이 들었다”며 수치를 기억했다. 현재 면소재지 근처에서 구성장이 열렸는데, 김천과 지례 쪽 그리고 상좌원쪽으로 난 포장되지 않은 신작로에 사람들이 넘쳐났었다고 한다. 당시 구성면의 인구가 1만 명을 훌쩍 넘었을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 저 멀리 필봉이 보이고 있다

2002년 태풍 루사는 구성면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소위 매운탕 거리로 김천시민과 인근시군으로부터 유명세를 떨쳤던 구성면 매운탕 거리는 루사와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돈이 돌지 않은 곳에는 사람도 떠난다. 시군 통폐합 당시였던 1995년까지만 해도 5천명을 넘었던 구성면의 인구는 현재 2,712명에 불과하다. 전교생 17명의 초등학교가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지속적인 탈농촌화와 고령화가 모든 농어촌의 문제가 되고 있다.
↑↑ 구성면민의 화합을 위한 면민의날

김동진 구성면장은 “가장 중요한 것이 면민들의 화합이다. 그 화합을 일구기 위해 4월 1일을 면민의 날로 제정하고 제1회 면민의 날 행사를 올해 처음 진행했다”고 밝혔다. “농촌지역은 고령화가 진행되다 보니 새로운 산업은 고사하고 있는 농사 추스르기도 힘이 드는 형편이다. 귀농인들에게 기대를 걸고 있지만 만만한 일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 1922년 과곡공립보통학교로 설립되었다가 지난 2009년 폐교가 된 과곡초등학교(1994년)

현재의 구성면 뿐 아니라 농촌의 현 주소를 알려주는 말이다. 귀농인은 농촌지역 어디에서든 반기지만 귀농인들이 원하는 지역은 도시 근교 지역과 자기들의 삶을 제대로 보장해줄 지역이다. 한 귀농인은 “우리는 농촌 현지에서 보는 것처럼 한가로이 농촌 정서를 즐기러 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설계하여 개척하러 가는 사람들이다”고 말한다. 그 말속에는 도시처럼 화려한 인프라를 바라지는 않지만, 새로운 환경 속에서 집이 필요하다면 스스로 집을 건축할 것을 도와줄 전문가, 농사를 짓는다면 그 방법을 가르쳐 줄 전문가들이 필요하다는 뜻이 함축되어있다.
↑↑ 구성면에 위치한 김천시농업기술센터

그리고 현재 김천시 농촌기술센터에서 진행하고 있는 농사 전문 외국인의 활용방안도 새롭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즉, 농사를 짓는 농가에서 원하는 만큼의 외국인을 데려와 아예 농촌의 논과 밭의 작물들은 외국인들에게 맡기고 주인은 농사의 경영과 관리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조심스레 일어나고 있다.
↑↑ 구성면민의 새로운 화합처로 거듭날 옛 구성중학교

김 면장은 “귀농인을 중심으로 10월 경에 난장이 열리고 있다. 또 구성중학교를 구성면민들에게 돌려주어 새로운 구심점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다”고 말한다. 현재 구성면에는 면민들이 모이고 의논할 장소가 그만큼 없어졌다는 뜻이다. 김 면장은 한발 더 나아가 “귀농협의회를 통해 우리고장 바로알기 사업을 추진하려고 한다. 누군가 시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면민 스스로가 자긍심을 갖고 이런 사업을 진행할 때, 새로운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고 밝힌다.
↑↑ 2022년 열렸던 김천시민체전에 참여한 구성면(구성면 제공)

김동진 면장은 “물론 구성면민의 화합과 결속력은 대단하다. 코로나 이후 처음 개최됐던 작년 김천시민체전에서도 2위를 차지하는 등(물론 그전에는 1위를 차지한 적이 많았었다) 단결력으로 똘똘 뭉친 고장이다”면서 “모든 것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들에게 배려와 감사로 함께하는 구성면을 이룬다면 구성면의 새로운 활력은 자연스럽게 찾아올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 구성면의 자두밭

현재 구성면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일할 줄 아는 면장과 면사무소 직원이 앞장서고 구성면을 이루고 있는 면민들과 귀농인들이 똘똘 뭉친다면 구성면의 미래는 밝을 수 없다. 구성면에는 김천의 농업을 진두지휘하는 농업기술센터가 위치하고 있으며, 농소농협과 통합한 남김천농협의 본점이 이곳 구성면 소재지에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 새로이 지어진 샤인머스캣 농장

비록 아이들의 글 읽는 소리 청아했던 구성면은 사라졌지만,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구성면의 정신을 쫓아, 면민들이 새로운 각오로 똘똘 뭉친다면 희망의 물결이 역동치는 구성면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 양각리의 자두밭과 복숭아 밭


*기사 취재를 도와 주신 구성면민 여러분과 특히, 김동진 구성면장 그리고 심재혁 이장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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