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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砥柱中流4] 나라가 망하는데 여자가 있다고?

지비저널 기자 입력 2020.11.08 18:07 수정 2021.04.04 13:35

나라가 망하는데 여자가 있다고?

                                -소설가 정완식

 

↑↑ 앞강물을 밀어내리는 뒷강물을 바라보면서...

역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문화가 바탕을 이루었다. 흔히 망국의 역사 뒤에는 여성이 있다며 아예 망국이나 영웅의 비참한 말로의 책임을 여성에게 뒤집어 씌우는 경우도 허다했다. 성경에는 데릴라라는 악녀가 있었으며, 중국에서도 하걸왕의 말희, 은 주왕과 달기, 주 유왕과 포사, 오 왕 부차의 서시, 당현종의 양귀비, 청나라의 서태후 등을 공식처럼 등장시켰다.

 

애첩 진원원이 반란군 이자성에게 사로잡히자 산해관을 여진족에게 열어 명나라를 멸망시킨 오삼계에 이르면 실소를 함께 느낀다. 만주사변으로 만주를 잃을 때 지배자 장쉐량(張學良)은 북경에 있었다. 그의 로맨스 상대가 영화배우 호접(胡蝶)이어서 만주인들은 분노하며 “나라를 사랑하지 않고 미인을 사랑한 장군”이라며 욕설을 퍼부었다고도 한다.

 

어찌 망국이 미인의 책임일까만 호사가들에게는 솔깃한 소재여서 반쯤 책임으로 넘겨주기 쉬웠으리라. 논개나 산홍, 성주의 앵무에 이르면 어려울 때 여성의 힘이 강하게 작용함을 안다. 또한 술이 취해 반쯤 없어진 월급봉투를 들고 들어오는 남편을 타박하지 않고 어려운 살림을 꾸려나간 어머니들이 가정을 지키고 나라를 지킨 것이다.

 

나훈아의 「테스형」이란 노래가 세간에 화제인 모양이다. 가창력도 뛰어나고 섹시함을 갖춘 위험한(?) 외모도 한몫했겠지만, 그의 이미지가 수십 년간 너무 강렬했던 탓이리라. 그가 처음 나왔던 1960년대 말 수많은 청년들 특히 처녀들이 도시로 일자리를 찾아 나갔던 산업화 초기였다. 그들 앞에 강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사내가 “도올담길 돌아아서며 또 한 번 보오오오고……”라고 부르니 그 처자들의 가슴에는 어머니가 살아났을테고 일약 고향을 떠난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었다. 가수 이미자 氏가 여성들의 엘레지였다면 나훈아는 이 세대의 영원한 울림이 되었다.

 

그들은 일하며 함께 늙었고 어느덧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었다. 그 무렵 구미에 취직하러 온 아가씨들은 칠순이 되었다. 전자도시 시민답게 여성들도 삼성과 LG의 성장과 더불어, LCD와 PDP의 차이 정도는 잘 알고 있다. 나라가 흥하는데 여성이 있었으니 산업훈장은 그들이 받아야 했다. 페미니즘은 그들의 희생 위에 만들어진 말이라고 감히 판단한다. 그런데 요즘 세태를 보면 여성의 의무는 어머니 세대가 다하고 그 권한은 목소리 높은 몇몇 정치인들이 누리는 형세이다.

 

또한 어느 여성 정치인이 법무장관이 되었을 때 우파 계열의 몇몇 인사는 상당히 기뻐했다. 그 정치인이 전 대통령 탄핵 당시에 찬성했으며, 드루킹 댓글 여론조작 사건도 경찰에 수사를 의뢰함으로써 김경수 경남지사에게 멍에를 씌우는 자충수를 두었다는 것이다. 즉, 그 사람은 숨은 우리 편이라는 말이었다.

 

결국 법무부장관은 국민들의 분노는 아랑곳하지 않고 검찰총장을 핍박하여 대선 후보로 키웠고, 여당 차기 후보가 될 위인의 자리마저 위협받게 만들었다. 정권 측에서는 희생타자인 법무부 장관 한 사람으로 경제침체, 안보위기, 외교실종 등 국정운영 전반에 걸친 위기를 숨길 수 있으니 피차 좋은 일이 된 셈일까? 라임이나 옵티머스 의혹만 죽기 살기로 막아주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국민 때문에 목숨 걸었다는 왕이나 대통령 본 적 없다”는 나훈아의 말을 곱씹어보면 나라가 망하는데 여자가 있다는 말보다는 옳은 듯하다. 다만, 정권을 위기로 몰아넣고 손가락질을 받는 데는 여자가 있을 수도 있으리라 보인다.

 

 

 

*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견해이며, 지비저널의 편집 방향과는 관계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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