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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砥柱中流3] 왕후장상의 씨

지비저널 기자 입력 2020.11.01 18:36 수정 2021.04.04 13:34

왕후장상의 씨

         -소설가 정완식

 

↑↑ 석어당, 조선시대 선조의 거처

중국 최초의 통일왕조인 진(秦)나라가 멸망한 데는 법의 엄격함이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만리장성을 쌓는 부역에 동원되던 징발 인부들이 비 때문에 현장 도착에 차질이 빚어졌다. 일행들이 무정한 법의 잔혹함에 목이 날아갈까 두려워 떨자, 설득한 사람은 진승(陳勝)이었다.

 

“왕후장상에 어찌 씨가 따로 있겠는가?(王侯將相 寧有種乎)” 이 말이 진나라를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시초가 되었다.

 

진나라의 가혹한 법 적용은 결국 나라를 멸망으로 이끌고 법가인 승상 이사(李斯) 역시 자신이 만든 법에 의해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사의 몰락은 법가의 근본을 배우려 하지 않고 권력을 잡으려고 지엽적인 활용에만 몰두한 탓이었다.

 

과거를 통해 입신양명을 꿈꾸던 붓의 세력도 있었다. 과거제도는 동양의 여러 나라들에 의해 전통적으로 시행된 인재선발 방식이었다. 지방호족이나 군벌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제도였지만 과거는 기본적으로 기회균등과 공정함이 바탕에 있었다. 천민을 제외하고는 농부의 아들도, 평민의 아들도 원칙적으로 과거에서 차별받지 않았다. 문벌이 천한 불리함을 딛고 정당한 경쟁을 거쳐 사회에 진출하려는 청년들에게 희망이었다.

 

우리는 과거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대학입시, 기업체의 공채나 인문계통의 고시는 신분을 바꿀 수 있는 현대의 과거제도였다. 이런 인재선발은 우리나라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던 기초가 되었다. 또한 전후 베이비붐으로 형제는 많고 돈은 없으니 ‘기능인(기술인)은 조국근대화의 기수’라는 다짐으로 땀 흘려 일했다. 열심히 일한 사람들로 가난을 벗어나고 나라도 발전했다. 단군 이래 가장 역동적인 시대를 이끌어 온 바탕이었고, 청년에게는 왕후장상에 씨가 없다는 믿음으로 달려온 날들이었다. 개천에서 용들이 났다.

 

빛이 밝으면 그림자도 짙은 법. 197,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세대가 사회의 주축이 된 지금 법가(法家), 의가(醫家), 운동가(運動家), 정치가(政治家), 노동가(勞動家), 연예가(演藝家), 방송가(放送家) 따위의 제자백가가 집단 세력을 이루게 되었다. 일부 세력은 헌법을 우습게 알며 자신들의 논리가 곧 법이라는 우월의식에 사로잡혀 있다고 한다.

 

출산율의 저하된 시대에 한두 자녀를 키우며 눈치 빠른 정치가는 세습정치인을 기르고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법을 만들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입법가들이 이러니 뒤질세라 누후죽순처럼 자기들에게 유리하도록 법학대학원을 만들고, 자기 자식에게 유리한 공공의대 설립을 추진하고, 세습노조를 꿈꾸는 세상으로 변했다. 세대에 걸쳐 신분 고착화가 착착 진행되고 있으니 정벌, 법벌, 의벌, 노벌이 난립해 과거 군벌이나 재벌을 욕하던 일은 우스운 꼴이 되고 말았다. 이제 대한민국에 ‘왕후장상은 씨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 터인가?

 

법무부장관은 사실상 법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전임 법무부장관의 가족은 자식의 입학비리 혐의를 받고 있고, 현 법무부장관은 아들의 군 복무 시절 병가 관련 의혹을 받았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인 학력과 병력에서 문제를 보인 것이다. 이는 자신만의 불법은 가리고 이익을 위해 법을 이용하는 치사한 행태이다. 2천 년 전의 진나라 승상 이사보다 못한 이 시대의 못난 법가들이 벌이는 있는 추태라는 생각이다.

 

오늘도 수많은 청년 일자리가 사라져 가고 있다. 학교를 졸업해도 취직자리가 없다. 이들은 법무부장관의 처사를 보며 희망을 기대할 수 없는 나라라고 절망하고 있을 것이다. 법이 공평함을 잃으면 아무리 강한 나라라도 버틸 재간이 없다.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남의 자식인 붕어, 개구리, 가재의 피눈물은 외면하고 제 자식인 용의 눈물만 생각한다면 과연 사회가 다시 역동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 법무부장관의 국회 발언이 생각난다.

 

“제 아들이 울고 있어요” 법무부 장관의 군필자 아들이 우는 건 왕후장상의 길이 막혔기 때문일까?

 

 

 

 

 

 *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이며, 지비저널의 편집 방향과는 관계 없음을 알려드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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