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高牙) 천년의 향기, 통합신공항 시대 구미의 중심을 꿈꾸다!
↑↑ 고아들을 가로지르는 건설되고 있는 33번 국도 |
2> 고아,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1)
33번 국도를 지나면서 고아는 시작된다. 문성리가 첫 눈에 들어온다. 문성리는 원호리와 함께 소위 도농 복합도시 고아읍(高牙邑)의 도시 부분을 상징한다. 인구의 약 70%가 넘는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고, 지금도 계속하여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다. 그들은 도심 아파트의 폐쇄성, 그리고 젊은 사람일수록 고아라는 읍 명칭에 반발이 강하다. 즉, 그 사람들 역시 구미의 일반 도시 사람들과 다름이 없다.
↑↑ 문성의 아파트 단지 |
문성리의 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 30대 A씨의 말을 들어보자. “고아읍(高牙邑)이라... 저는 고아읍(高牙邑)에 들어온 지 얼마(3년이 채 안된다고 밝힌다) 되지도 않고 고향도 아니다보니 관심이 없어요. 얼마 전 도량동사무소에서 민원이 제기돼 고아읍(高牙邑) 분소가 만들어졌다는 농담을 들었어요. 고아읍(高牙邑)청사가 옮겨오든 고아 쪽이랑 갈라서든 저는 관심 없어요. 그리고 ‘고아’라는 말은 좀 그렇잖아요”라고 말한다. 옆에 있던 B씨 또한 “인노천도 정비하고 있고 조용해서 좋기는 한데... 아직 애들이 어리다보니 크게 불편한 것은 없는데.. 문화시설(도서관, 영화관 등)이 없고... 교통도 불편한 것 같아요”라고 덧붙인다. 새로운 고아의 문화와 도심이라는 말이 이해가 갔다.
↑↑ 김형수 원호2리 이장 |
원호2리 이장을 지내고 있는 고아토박이 김형수(59세)씨는 말한다. “어릴 때 삼천리 자전거를 타고 가면 구미중학교(현 구미고등학교 자리)까지 죽 내달려요. 빵구(펑크)도 얼마나 잘 나던지... 우리는 구미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우리도 커나갔지요”라며 도농복합도시 고아읍(高牙邑)에 대해 말한다. “지난날 체육대회를 하면 아파트와 자연부락이 함께 했는데 요즘에는 코로나19 등으로 그런 체육대회도 못하고 있어요. 저도 현재 아파트에 거주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고아에 대해 특히 도농복합도시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어요. 문도 잘 안 열어줘요”라면서 도심 고아읍(高牙邑)에 대해 이야기한다. 김 이장은 “분읍은 찬성한다”고 실질적으로 말한다. “도농복합도시를 살기 좋은 마을로 꾸민다는 것은 말처럼 싶지 않아요. 지금 투표 하면 바로 분읍이 바로 될 겁니다”라고 말한다. 아울러 그는 구미가 한층 더 발전하고 고아읍(高牙邑)이 구미의 중심이 됐으면 한다”고 덧붙인다.
↑↑ 양종기 고아터미널 대표 |
원호와 문성을 뒤로 하고 길을 다시 떠났다. 고아읍(高牙邑) 사무소 인근에서 40년째 버스터미널 대표를 맡고 있는 양종기 고아버스터미널 대표를 만났다. 양 대표는 83세라고 말하면서 웃는다. “아버님 고향은 의성이지만 아버지 형님의 처가가 선산군에 있어 해방 후 바로 내려왔어요. 저는 초등학교부터 고아 학교를 나와 내 고향은 여기 고압니다. 40여년 전 황무지에 불과했던 고아터미널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고아읍(高牙邑) 사무소 재건축 추진위원으로 읍사무소를 새로 건축했고, 파출소 역시 방법자율위원장으로 경북도에 가서 지어달라고 부탁을 해서 이렇게 짓게 됐어요. 고아발전협의회장, 의용소방대장, 정화위원장, 새마을지회장 등 감투를 많이 썼어요“라며 산업화 시대의 주역이었음을 확실히 밝힌다. 이러한 어르신이 계심으로 인해 대한민국이 세계 속의 대한민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음을 확인한다.
양 대표는 “고아는 쉬어가는 곳이란 생각을 많이 해요. 또 선산으로 들어가는 사람들과 차편 등 모든 것이 교량 역할 밖에 못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면서 “현재 제2농공단지를 짓고 있는데 분양가가 많이 높아 가뜩이나 불황인데 기업이 들어올 수 있을지 걱정을 많이 해요. 구미시에서 분담을 해야 하는데...”라며 말을 아낀다. 또한 선출직은 서로 힘을 합쳐 우리 고장의 발전을 위해 힘을 쏟아 주길 바래요”라며 그의 희망을 말한다. 그는 고아읍(高牙邑)의 명칭 개칭과 분읍에는 “자기들끼리 뒤에서 지금도 하고 있지는 모르겠지만, 반대합니다”면서 의견을 제시한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눈 속에서 고아읍(高牙邑)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 김실경 전농 전경북도의장 |
다음으로 만난 사람은 전농(전국농민회총연맹) 경북도의장을 맡았던 김실경 전의장이다. 그는 81세로 고아읍(高牙邑)에서 태어났다. 몇 년 전 고아 이름을 바꾸어 보자고 했지만 잘 안됐고, 고아읍(高牙邑)의 분읍은 반대했으며, 농업진흥지역(절대농지)을 풀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그는 고아읍(高牙邑) 출신 명창 박록주 선생을 기억했다. “커다란 키에 남자 목소리 반, 여자 목소리 반이 섞인듯한 목소리, 한복을 입고, 부채를 들고 창을 했어요”라고 기억했다. “영남지방은 우리 노래인 창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지 박록주 선생의 생가도 팔리고 기념관도 없어요”라며 동향 예인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농사는 가장 좋은 직업입니다. 노력의 댓가를 바로 지불받는 정직한 직업이다보니 거짓이 있을 필요가 없어요. 의사, 변호사, 국회의원이 잘 먹고 잘사는 나라가 좋은 나라겠어요? 천천히 가도 함께 가는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농업이 자본주의에 밀려 천대 받는 것이 안타까워요. 이스라엘 같은 농사에 척박한 선진국도 농업(식량수급)이 자급자족 합니다”라고 밝힌다. 그리고 “(선출직을 나열하면서) 지금 현재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지 오래 사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라고 강조했다.
“농사지은 것을 제 값 받고 파는 것이 농사짓는 사람한테 가장 좋은 겁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가장 근본 원인은 농사짓는 사람이 자기가 생산한 농산품에 스스로 가격을 정하지 못한 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젭니다”라고 말한다. “경제 논리로 농사를 결정해서는 안됩니다”고 분명히 선을 긋는다. 그는 침례교회를 다닌다고 말하면서, 사랑은 희생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일할 사람은 방법을 찾고, 일하지 않을 사람은 핑계를 찾습니다”라는 말과 그의 경험에 의해 “서울의 삼성과 현대 같은 기업이 하는 의료센터가 하나쯤은 각 도에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는 그의 말이 귓전에 다가온다.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의 젊은 시절은 농민회 활동으로 대단했다’고 말한다. 형형한 그의 눈빛이 그의 삶을 말해 주고 있다.
↑↑ 김병환 고아농공단지 협의회장 |
또 다시 고아의 길에 나섰다. 읍 소재지에서 얼마 벗어나지 않은 곳에 고아 농공단지가 있었다. 이곳의 협의회장인 김병환 고아농공단지협의회장(장천 출신)을 만났다. 김 회장은 “고아농공단지는 전국 최우수 농공단지로 지정됐습니다. 최근 구미 경기와는 별도로 고아 농공단지는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라고 밝힌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직격탄을 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김 협의회장의 말을 들어보자. “세계적 팬데믹 현상인 코로나19의 영향을 받아 우리 고아 농공단지는 지금까지는 잘 해왔지만 앞으로가 문젭니다.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라면서 코로나19의 지속여부 등을 세밀히 지켜볼 방침이라고 전한다.
김 협의회장은 “구미에서만 기업 한지 40년이 넘었습니다. 우수하고 탄탄한 중소기업이 들어와서 고아 농공단지를 제대로 살려야 합니다. 그 길이 구미가 살고 대한민국이 잘사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고아농공단지는 잘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미는 투 트랙으로 가야합니다. 예전 같이 큰 기업들이 이제 구미에 들어오기 힘들 겁니다. 작지만 탄탄한 소위 강소기업을 키워야 합니다. 그 조건으로 공단 정비 사업입니다. 빈 공장을 타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도시 정비가 필요한데, 도시가 뭉쳐있어야지 흩어 놓았기 때문에 더 더욱 힘이 듭니다”라고 말한다.
↑↑ 고아농공단지 전경 |
1988년 준공된 고아농공단지는 15만9천여㎡로 52개 업체가 입주했으며 가동률은 약 96%에 달하며, 총 1,195명의 근로자가 취업했다. 2020년 2/4분기 매출은 1,713억 원을 달성했다. 김병환 협의회장은 “한 업체가 철수하며 사업장을 임대했는데 다른 업체가 입주하여 가동 중이다”면서 100% 가동 중이라고 덧붙인다. 그의 꿈처럼 고아 제2공단의 분양가가 낮추어지고 강한 기업들이 들어오길 응원한다.
3> 고아,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2)~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