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지주중류

창간 칼럼> 시대를 기록하는 춘추필법(春秋筆法)

대경저널 기자 입력 2021.12.29 13:36 수정 2021.12.29 13:53

[대경저널=대경저널기자]

시대를 기록하는 춘추필법(春秋筆法)
                                    -소설가 정완식

↑↑ 정완식 작가

동양 소설을 망라해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는 『삼국지』의 관우(關羽)일 것이다. 이 등장인물은 대하소설로 된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다. 그의 죽음은 사실상 작품 생명의 결말을 의미하며, 여기서 책장을 덮는 독자들이 적지 않다. 대시인이자 정치가인 조조가 저택, 미인, 벼슬로도 무릎 꿇리지 못한 고귀한 정신의 소유자였다. 이미지는 고착되어 만화나 게임에서 긴 수염을 휘날리는 거구의 사나이로 묘사된다.

그에게 부여된 진정한 이미지는 문무겸전의 유장(儒將)이다. 한 손에는 『춘추』를 들고 다른 손에 언월도를 잡아 대의명분을 중요시하는 장군으로 보이게 했다. 얼마나 멋진 이미지였던지 후에 칼이나 총을 찬 장수들이 본받아야 할 전범으로 평가되었다. 「출사표」의 “臨表涕泣 不知所云”의 대목과 관우의 『춘추』는 사람 목숨을 파리처럼 여기는 비적이나 병졸 출신의 일자무식 군벌이라도 약간 흉내 내는 척해야 제법 무장 표시가 날 정도이다.

북양의 최고 맹장이자, 대총통을 지낸 조곤(曹錕) 휘하에서 군권을 장악한 오패부(吳佩孚)는 아예 『춘추』를 한 손에 들고 스스로 관우와 동일시하기도 했다. 북양군벌 시대 수많은 장성 중 유일하게 진사시에 합격한 자격으로 다른 군벌들의 무식함을 업신여기는 오만함도 관우와 흡사했다.

『춘추』의 기술방식은 꾸미는 언사는 제외하고 간결하게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 그러면서도 글자 선택으로 판단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이 판단이 공자의 시각을 반영하며 하늘의 뜻을 받아 대의를 펼쳤다고 해서 춘추대의(春秋大義)라고 한다. 서술방식이 엄정함을 갖추었다고 해서 대의명분을 밝혀 세우는 문장서술을 춘추필법이라고 했다. 봄과 가을이 교차하는 자연의 흐름처럼 인간사를 법도에 맞게 쓴다는 것이다. 대의라는 것 역시 그렇게 보면 거스르지 않는 자연의 이치에 바탕을 둔 인간의 삶이다.

언론은 민주국가의 근본이자 권력을 견제하는 수단이다. 언론의 기사 작성을 춘추필법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시대의 모습을 기록하는 역할도 한다. 시대가 가진 고민과 모순, 즐거움과 희망을 있는 그대로 서술한다. 때문에 언론의 기록이 쌓이면 역사가 되니 사관의 역할에 다름 아니다. 숨겨야 할 부분이 없는 시대는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고, 숨길 일이 많거나 기록하는 자에 대한 폭력이 배태되어 있다면 암흑기가 되는 이유이다.

권력과 싸우는 무기는 칼라시니코프의 AK-47이나 사무라이의 카타나가 아니라 「조의제문(弔義帝文)」을 기술한 김종직의 붓처럼 엄정한 언론이다. 때문에 권력에 위축되지 않고 돈에 허물어지지 않는 의무를 가진다.

언론은 또한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소망을 밝히는 일이다. 과거를 기록하고 미래를 예측해 나가야 한다. 현재를 기록하며 미래로 나아가야 할 정보를 끊임없이 전달해 주는 역할이다. 순식간에 세상이 바뀌는 시대이다. 중세나 농경시대처럼 사고방식이 오랜 시간 동안 고착화되지 않고 사회구조나 인간의 가치관은 정보에 맞춰 짧은 시간에 변화한다. 언론은 우리 시대를 사는 우리 지역 사람들이 내일 원하는 바를 밝혀 나가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언론은 인간다움을 특징짓는다. 사회의 기록이 축적되어 지식이 되고 문화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언론이라는 기록자가 없다면 진보는 불가능하게 되니, 이것이야말로 짐승들의 군집이 아닌 인간의 사회가 비로소 되는 것이다.
입은 봄바람처럼 가벼워 불리하면 취소할 수 있다. 그러나 붓으로 쓴 글은 먹의 생명력을 얻어 불태우지 않는 한 천년을 변치 않는다.

〈대경저널〉이 힘찬 발걸음을 떼놓았다. 지역의 역사를 써 내려간다는 사명감 하나로 창간했으니 우리 지역 문화창조를 위해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칼은 습기를 만나 풍화되지만, 글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 큰 빛을 발한다. 돈의 유혹과 권력의 위협에 붓이 흔들리지 않는 강함이 있어야 한다. 서생의 붓은 한 치에 불과하지만, 대장군의 명검이나 황제의 부월(鈇鉞)이 목에 떨어질지언정 더 꼿꼿해야 생명력을 얻는다. 무릎 꿇지 않고 세울 언론의 자부심을 바라마지 않는다.

〈대경저널〉 창간에 즈음해 시도민들이 큰 기대를 거는 이유이다.



저작권자 대구경북저널티브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