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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砥柱中流32] 치수(治水)는 구미발전의 토대였다

지비저널 기자 입력 2021.07.18 13:25 수정 2021.07.18 13:32

치수(治水)는 구미발전의 토대였다

                               -소설가 정완식

 

올해는 장마가 짧은 대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고 한다. 짧은 장마라고는 하지만 일부 남부지방은 집중호우로 피해를 본 모양이다. 그래도 집과 가축은 물론 인명까지 앗아간 옛날에 비하면 피해라 볼 수 없는 정도이다.

신화에서부터 물은 징벌과 재생이라는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문명이 강가에서 꽃을 피웠지만, 신이 인류를 징벌할 때도 홍수라는 방식을 사용한다.

 

중국 신화 중에서 물에 관한 부분은 당연히 양자강이나 그 상류인 금사강, 민강 등에 집중되어 있다. 그만큼 상류부터 물의 위험이 상존해 있다는 증거이다. 오죽하면 치수에 능한 자가 천하를 다스린다고 했겠는가. 그만큼 성난 물은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위협이 된다. 우(禹)는 하도(河圖)와 옥간(玉簡)을 얻어 치수에 성공해 왕이 되었다.

사실인지 몰라도 대만의 미사일은 삼협댐을 조준하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수긍이 간다. 미사일 몇 방이면 중국 중부지방은 대혼란에 빠진다는 계산이다.

 

삼국지의 관우는 한 손에는 『춘추』를 들고 한 손에는 언월도를 잡아 의리의 대명사로 신격화되어 있다. 번성 싸움에서 수공으로 많은 인명을 살상했다고 비판받는다. 수공이라기보다 장마철을 이용한 공격이라는 반박도 있다. 어쨌든 양자강 중류 지역은 예나 지금이나 수전에 능한 자의 영역이고 치수라는 숙제를 안겼다.


장개석은 일본과의 싸움에서 중원의 정주를 지키려고 1938년 6월 황하 제방을 파괴해 일본군 두 개 사단을 막아내기는 했지만, 집중호우가 뒤따라 89만의 사망자와 1천2백만이 넘는 이재민을 냈다. 장개석은 후에도 황하의 수공을 잘 이용했지만 인명과 재산 피해 때문에 두고두고 공산당의 공격거리가 됐다. 10년이 못 되는 1947년 등소평의 군대가 장개석의 수공으로 생긴 길고 긴 늪지대를 뚫고 중원을 횡단하면서 공산당의 반격이 시작됐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구미는 낙동강과 감천의 합수 지점에 있는 곳이라 예로부터 물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오로리 앞의 들판을 거쳐 예강리로 이어지는 들판과 지산벌은 원래 강이었다. 구미1공단 세무서 동쪽 역시 강바닥이었다. 큰물이 지면 모두 휩쓸려 내려가 기름진 곡창임에도 늘 흉년을 겪었다. 구미의 숙원은 낙동강 제방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낙동강 제방사업으로 구미는 엄청난 발전의 기초를 놓았다. 기름진 평야를 얻었고, 세계적인 첨단산업도시의 터전을 닦았다. 포철을 건설한 사람들은 난관을 사진만장(沙塵萬丈)이라 했다. 구미는 한수만파(汗水萬波)라 할 만하다. 땀이 물결이 되어 엄청난 파도를 일으켰다면 약간 과장일지라도 구미시민에 대한 찬사로 부족하지 않다.

 

대구시와 취수원 갈등으로 구미가 시끄럽다. 대구뿐만 아니라 어느 도시건 상수도가 큰 고민거리이다. 가뭄이 심하면 경북의 일부 지역은 댐이나 저수지가 소용없게 되어 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구미보가 있고 치수가 돼 있어 물 부족을 걱정하는 도시는 아니지만, 기후가 변하고 몇 년 전 물지옥을 경험했던 경험이 있어 마음 놓을 수 없다.

 

대구시와의 취수원 문제는 시민들의 슬기로운 혜안을 바란다. 

 

 

 

 

*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견해이며, 지비저널의 편집 방향과는 관계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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