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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감호 여대로 의병대장의 창의 433주년을 기념하며...

대경저널 기자 입력 2025.06.13 10:36 수정 2025.06.13 10:44

김산(태어날 당시) 기를 출신 감호 여대로 의병대장이 의병 창의가 433돌이 되었다. 지난 12일 오전 11시부터 성산 여씨 문중에서 창의 433주년 기념 행사를 개최했다.

↑↑ 감호 여대로 의병대장 창의 433돌 기념식장


이 자리에서 배낙호 김천시장을 비롯하여 나영민 김천시의회 의장을 대신해 참석한 이상욱 의원 등은 내년부터 창의기념 행사를 여씨 문중과 구성면민이 기리는 날로부터 김천시청에서 주관하는 행사로 만들어 모든 김천시민들이 기리는 행사로 격상 시킬 것을 다짐했다. 비록 늦은 감이 있지만 환영한다,

1592년 5월 23일 임진왜란이 시작된지 불과 20일 만인 6월 12일 여대로 의병대장은 창의 격문을 발표하면서, 의병을 조직하고 훈련하기 시작하여 각지의 관군 및 의병들과의 협력을 통해 전라도로 진출하려는 왜군을 좌절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당시 함양의 조식 선생(1501~1572, 임진왜란 1592)은 의(義)를 최고의 가치로 판단한 인물이었다. 그는 內明者敬 外斷者義(안으로 마음을 밝히는 것은 敬이요, 밖으로 행동을 결단하는 것은 義이다)라는 검명을 쓰면서 의(義)를 중시했다고 한다, 이러한 조식 선생의 문하생이었던 곽재우 의병대장과 함께 여대로 의병대장 역시 조식의 제자였다. 이들과 함께 활약한 정인홍 대장도 마찬가지였다.

감호 여대로 의병대장의 창의 행사를 시에서 주관한다고 했지만 의식 행사 등 전반적인 행사는 여씨 문중 등 민(民)에서 맡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다. 의병이란 것은 나라에서 훈련시켰던 관군이 아닌 나라가 풍전등화에 놓였을 때 오직 의(義)로서 일어난 무명의 일반 백성이었기에 더욱더 민(民)이 행사의 주최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사성족계(인천 이씨, 하빈 이씨. 진주 강씨, 성산 여씨)는 물론 성산 배씨 등 무명의 일반 백성들의 후손들이 김천에서 명멸하면서 김천의 가치와 존재를 지켜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족을 단다면 433년이라는 엄청난 세월이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나라가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현 상황, 감호 여대로 의병대장의 임진년 창의가 더욱더 중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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