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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砥柱中流20] 어느 학교의 역사

지비저널 기자 입력 2021.03.07 15:25 수정 2021.04.04 13:42

어느 학교의 역사

           -소설가 정완식

 

↑↑ 월암서원에서 바라본 낙동강

 연세 높은 어느 노교수님의 의뢰로 그분이 졸업하신 모교 100년사의 자료를 찾아 드리고 있다. 갑오개혁 직후에 설립한 몇몇 사립학교들은 130여 년에 가깝다. 그러나 시군 단위의 학교들은 1905년부터 1909년 사이에 지역주민들이나 선각자들에 의해 세워진 사립학교에서 근원을 찾는다. 선산초등의 전신 창선학교(彰善學校)나 구미면에 있던 선진학교(善進學校)가 바로 그 무렵에 세워진 것처럼 다른 지방 역시 그렇다.

 그 사립학교들은 시군의 경우 1910년을 전후하여 공립화되어 일본인 교장이 부임해 일본학교를 만들었다. 일본학교가 되어 일본어가 국어가 되고 조선어는 선택과목이 되었어도 부로들은 자제들이 문맹을 면하도록 전 지역민이 일체가 되어 학교운영을 도왔다.

 그런 학교를 졸업하고 고등보통학교를 나온 인재는 고향으로 돌아와 문맹 퇴치를 위해 야학과 강습소를 만들어 월사금을 못 냈던 아이들을 호롱불 밑에서 가르쳤다. 그마저 1930년대 후반에는 폐쇄시키고 보통학교에서도 조선어는커녕 조성의 성까지 바꿔 버렸다.

 

 면 단위의 학교는 1920년경에 거의 공립화되어 일제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어 2020년 무렵에는 어느 고장이든 공식적으로 1백 주년을 맞게 되었다. 학교에 따라 명함 치레나 하고 지갑두께나 두툼한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자기들 이름만 새긴 기념비를 세우기도 한다. 지식인과 교양인을 많이 배출한 동창회는 역사를 조명하며 1백 년사를 편찬하고 있다.

 

 특정 학교를 거명해서 안 됐지만, 구미중학교가 현재 위치로 옮긴 건 1975년 신학기였다. 그때 재학생인 77년, 78년, 79년 졸업생들은 무던히도 고생했다. 체육, 농업, 기술, 특활시간은 대부분 작업이었다. 들성, 문성까지 길바닥이나 밭, 산에 돌덩이가 남아나지 않았다. 모두 운동장 닦는 지하로 들어갔다. 근대학교를 세울 때 역시 그렇지 않았을까.

 

 근대 사립학교들도 창립 초기에는 학생들도 웃통을 벗어던지고 운동장을 닦거나 건축자재를 나르며 학교건설에 힘을 쏟았다. 교육을 통한 인재육성은 그 지방민 모두의 숙원이다. 논을 희사해 부지를 만들고, 허리를 졸라매고 운영비와 장학금을 지원했다. 학생들이 체육대회에 가서 축구를 이기는 날이면 주민 전체가 이긴 듯 풍물이 울리고 잔치가 벌어졌다.

 큰 인재가 나오면 고장 전체의 자랑이었다. 학교는 지방문화의 전당이자 희망의 상징이다. 농어촌은 폐교가 늘어나는 시대이다. 학교에 희망을 걸었던 주민들은 학생 한 명이 남더라도 지키고 싶어한다. 학교가 없어지면 희망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세종시가 배포한 촛불혁명 교육서로 시끄럽다. 보지는 않았지만 정유라를 대통령으로 만들려고 했다는 내용이 있는 모양이다. 어린이합창단에게 특정 정파를 헐뜯는 노래를 하게 한다거나 이념을 심은 교육서를 배포하는 일은 교육현장에서 해서는 안 될 일이라 생각한다.

 민주당의 인사들은 과거 '청소년당원 육성'이라는 말을 공공연히 내뱉었다. 아직 만주시민의 기초를 공부하는 청소년들에게 정치적 이념을 주입하겠다는 말이다. 선전선동을 통해 한 정파를 위해 복무하는 부속품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아니면 무엇인가?

 

 에드가 스노가 쓴 『중국의 붉은 별』은 1980년대에 많이 읽혔다. 에드가 스노의 눈에 비친 소비에트의 중국공산당은 너무 노래를 많이 부르게 한다는 것이다. 노래를 통해 아예 신경에 각인시키는 일이다.

 똑같은 말을 수십 번, 수백 번 되풀이 하다 보면 거짓도 진실이 되는 것처럼 활자화된 책과 반복되는 음성은 진리로 바뀌게 된다. 교사의 영향력이 큰 학교에서는 더욱 그렇다.

 우리 교육현장의 일부는 1백 년 전 부로들이 문맹을 일깨워주려고 학교를 세웠던 정신과는 너무 다른 길에 들어서 버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견해이며, 지비저널의 편집 방향과는 관계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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