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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砥柱中流10] 마상득천하 마하치천하(馬上得天下 馬下治天下)

지비저널 기자 입력 2020.12.20 11:37 수정 2021.04.04 13:38

마상득천하 마하치천하(馬上得天下 馬下治天下)

                                                -소설가 정완식

 

 법이 문란해지면 유협(游俠)이 들끓는다. 유협들이 각자 세력을 키워 효웅(梟雄)이니 영웅이니 하는 계급으로 발전하면 세상은 혼란해져 무엇이 바른지 그른지 판단도 어렵다. 인간도 먹이사슬의 영향권인지라 이들은 중간에 강한 자들에게 먹히기도 하고 다른 자들을 억누르며 세력을 키워 간다. 세력 확장은 언덕 위에서 눈덩이를 굴리듯이 순식간에 커져 버린다.

 

 조직이 커지면 당연히 지휘자의 역량도 커져야 한다. 이를 보좌하는 문관들은 갖은 미사여구로 영웅을 만든다. 글자를 모르는 무식한 주군이라면 그깟 글자 따위는 다시 만들면 되니 알 필요도 없다는 선동을 한다. 무장들은 반대파들을 제거하며 주군의 용맹함을 과장해 떠벌인다. 천하를 반쯤 차지하면 집단 내에 각자 파벌이 생기게 되고 처음 거사를 시작했던 촌뜨기들은 뒷자리로 밀리고 새로 들어온 똑똑한 자들이 실권을 넘본다.

 

 반역이란 내부에서 일어나기가 쉽다. 영웅으로 알려진 주군이란 자는 가렴주구 하는 관리를 홧김에 때려죽인 정의의 협객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바보를 갓 면한 무식쟁이 깡패에 불과한 본질을 알아채게 된다. 평범한 리더이면 이 정도 수준에서 야망을 멈추거나 제거된다. 왕건에게 패한 후삼국의 양길, 궁예, 견훤 같은 효웅들, 진나라 말기의 진승과 오광 정도일 것이다.

 

 이쯤에서 비로소 도적과 정치세력의 구분이 시작된다. 정치구호는 선명해야 한다. ‘멸만흥한(滅滿興漢)’이든 ‘부청멸양(扶淸滅洋)’이든 ‘척왜양(斥倭洋)’이든 깃발을 쳐들고 지지자를 끌어모아야 한다. 세월호 진상규명이든 5·18 명예회복이든 검찰에 대한 복수이든 다 좋다. 그것은 그 집단이 천하를 장악했을 때 취할 사업들이기도 하고 천하패자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시키는 핑곗거리가 되기도 한다.

 

 이 정도라면 무력으로 천하를 장악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러나 말에서 내려 천하를 다스리기란 쉽지 않다. 어제저녁까지도 싸움터에서 피냄새만 맡고 지낸 자들이 황성을 점령해 궁녀들의 지분 냄새와 명주의 향기를 맡고 금은보화의 광채를 보니 어찌 현기증이 나지 않으랴.

 

 어제까지 길거리에서 화염병을 던지고 반독재를 외쳤으면 오늘 아침에는 말에서 내렸으니 현명한 인재를 찾아 바른 정치를 해야 한다. 저마다 사모를 쓰고 흉배를 붙이니 서로 마주 보며 칭찬하기 바빠 약속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다면 실천해야 한다.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말했으면 그렇게 만들어 나가야 한다.

 

 기껏 찾아낸 인재들은 특정 지방 출신들로 채워 붕당정치를 실현했다. 무능한 대학교수를 등용해 국민의 삶을 망쳐버리는 내기판이 되었다. 좋은 인재가 있으면 모셔오고 귀를 기울여 정책을 펼쳐야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위치는 특정세력이 전리품으로 독점했다.

 

 춘주 패자 제환공은 적의 편에 섰던 관중(管仲)을 등용했고, 정관의 치세를 열며 중국 황제 중 가장 뛰어나다는 당태종은 적인 형의 편에 섰던 위징(魏徵)을 등용했다. 오대십국 시대의 풍도(馮道)는 다섯 왕조, 11명의 군주를 섬겨 늘 재상의 지위를 유지하며 절조없는 인간으로 손가락질을 받았다. 그러나 왕조가 뒤바뀌는 혼란 속에서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킨 직업관료였다. 6명의 왕을 모신 신숙주(申叔舟)는 지조 없기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지만 그의 외교, 국방, 문화, 언어에서 탁월한 역할을 해냈다.

 

 국가를 이끌고 국민을 안정시키는 정치를 위해 필요한 인재가 붉은색이면 어떻고 푸른색이면 어떤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지도자의 마음에 이미 쥐잡기에 특화된 검은 고양이보다 아양이나 떠는 흰 고양이가 자리 잡고 있으니 천하패자는커녕 한 지역을 주름잡는 유협과 무엇이 다른가.

 

 

 

*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견해이며, 지비저널의 편집 방향과는 관계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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