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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해평과 선산의 먼 기억... 되살려야 할 우리의 문화유산

임호성 기자 입력 2021.08.21 22:25 수정 2021.08.21 22:35

제2의 장마라 불리는 가을장마가 시작된 21일 해평면과 선산읍 지역의 아스라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역사적 현장을 돌아본다.

↑↑ 천년이 넘는 세월을 버틴 낙산리 3층 석탑. 뒷쪽 태조산(냉산)이 구름속에서 아득하다.



먼저 해평면 낙산리에 위치한 보물 469호 낙산리 3층 석탑이다. 이 석탑은 8세기경인 통일신라시대에 지어진 건축물로 이제는 이름도 모르는 사찰의 기억과 함께 뒤편 고려 왕건의 태조산(냉산)과 함께 낙산리에서 천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해 오고 있다.

 

↑↑ 낙산리 고분군,

낙산고분군이다. 사적 336호인 고분군은 3~6세기경 가야와 신라시대의 고분군이다. 이곳 낙산 고분군은 월파정산(月波亭山) 고분군, 정묘산(鄭墓山)고분군, 불로산(不老山)고분군 등 250여기의 고분군이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 이곳에서 뛰어 놀았던 기억이 난다. 간혹 토기 등이 발견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고분군인 줄인 줄은 몰랐다”며 추억을 돌이켰다. 큰 봉분의 저경(底徑)은 20m에 가까운 대형분(높이 4m)도 있고 10m 남짓한 중형봉토분, 1m 미만의 소형분도 있다.

 

↑↑ 하위지 선생 유허비.


낙동강을 건너 선산읍 내에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제 236호인 단계 하위지 선생의 유허비가 있다. 선산의 자랑 장원방의 일원이기도 한 선생은 집현전 학사 출신으로 단종 복위 사건으로 사육신의 한 사람이 되었다. 숙종 때 복관되었고 영조 때 이조판서로 증직됐다. 비 앞면에는 有明朝鮮丹溪河先生遺墟碑(유명조선단계하선생유허비)라고 적혀 있으며, 측면과 후면에는 글이 적혀 있지 않다. 유허비 약 50m 앞에는 단계천이 흐르는데 이는 하위지 선생이 태어나자 3일 동안 붉은 물이 흘러 단계천이라 불려진다고 전한다. 여전히 단계천은 흐르지만 선산읍을 통과하는 일부 구간은 복개되어 있다.

 

↑↑ 박영선생의 송당정사.


선산읍에서 낙동강변을 따라 나가면 송당 박영 선생의 송당정사가 있다. 박영 선생은 무과에 합격해 선전관이 되었지만, 군자가 되지 못함을 한탄하다 성종이 죽자 선산 낙동강변으로 돌아와 정붕(鄭鵬)의 문하에서 경전을 배웠다. 그의 학문은 정붕의 영향을 받아 김굉필의 학통을 이었으며, 천문·지리·성명·산수 등에도 박학했다고 전한다. 미수 허목(許穆)이 지었다는 신도비가 있고 그 신도비 앞에는 선생이 직접 심었다는 모과나무가 구미시 보호수로 지정됐다. 명경당(明鏡堂)이라는 시비가 있다.

 


 

 

 

비 오는 토요일, 코로나로 지친 일상에서 틈을 타 살펴본 구미시의 유적들. 그 의미를 스토리 텔링 등으로 담아 좀 더 가치 있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으로 남겨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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