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문화·교육

1556년 시작된 사성족계(四性族稧)를 찾아...

대경저널 기자 입력 2025.06.20 18:14 수정 2025.06.20 21:13

김천시 구성면에는 사성족계기실비(四姓族稧紀實碑)가 위치하고 있다. 이 비석은 조선 명종 때부터 시작된(명종 11년, 1556년, 당시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책표지에 명종 11년이라 적혀있다) 성산 여씨, 인천 이씨, 하빈 이씨, 진주 강씨 등 네 성씨간 혼인을 매개로 성사된 계를 기념하는 비이다.



↑↑ 사성족계 명종 11년 표기가 보인다


기자가 이 비석을 접한지 2년여만인 20일, 사성족계의 일원인 성산여씨의 여환정씨가 계주로 있는 사성족계의 실체와 만났다. 이 자리에는 여환정씨와 함께 사성족계의 총무인 강용규씨 그리고 김천시향토사연구회 회장인 이갑희 회장이 함께했다. 

 

"사성족계는 매년 정초에 한번 모이는데 모임이 예전 같지 않다"고 올해 회장으로 취임한 여환정 회장은 답답해 했다. 또한 강용규 총무 등 모두들 "우리 대에서 끊기는 것은 아닌지"라면서 말을 잊지 못했다.   

계 문화는 삼한시대까지 거슬로 올라가는 등 역사를 추정하기는 쉽지 않지만 계 문화는 지역을 대표하는 현실 문화라는 것에는 이의가 없다. 계는 그 지역 내의 상호부조, 공동이익 등을 추구하는 대표 문화였다.

 

↑↑ 김천시의 계를 모은 책자


김천시향토사연구회에서 출간한 김천의 계안(金泉의 稧案)이라는 책자를 선물받았다. 이 책자는 사성족계를 포함한 김천을 대표하는 계 문화의 정수를 모든 책이라 했다. 강용규 총무는 "우리에게 원본은 없었고 필사본만 전해왔는데, 김천의 계안 이 책자를 발간하기 바로전에 '명종11년 시(明宗 十日年 始)'로 되어있는 원본 책자를 찾았다"라 밝히기도 했다. 이 책의 원본은 한국학중앙연구원에 보관되어 있다고 전했다.   

김천시향토사연구회 이갑희 회장은 “김천의 많은 수의 계들이 사라졌으며, 봉산의 대동회 같은 경우에는 계의 서문과 절목이 망실되어 수록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러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는 김천시향토사연구소에 감사를 드린다. 김천을 지키는 힘이 이곳으로부터 비롯된다는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이제부터 사성족계를 찾아 부모에 불손한자와 이웃과 화목하지 않는자를 어떻게 대했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저작권자 대구경북저널티브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